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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존재(存在)하는 이유(理由)
존재(存在)는 우리가 실제로 현실에 있음을 뜻하는 것이고 이유(理由)는 “결과를 이룬 까닭이나 근거” 입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내 의사(意思)와 관계없이 타의(他意)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태어났으니 존재하는 것이고 죽지 않았으니 존재하는 것이지만 해야 할 소명(召命)이 있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가 현실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살고 있는 까닭이나 근거를 모르고 산다면 방황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고 “도대체 사는 게 뭔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며 욕망에 따라 어딘가로 도망치려는 유혹에 빠져서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인식할 때 존재하는 소명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사는가를 아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고 한 니체의 말처럼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의 존재의 이유를 알아야 인생의 여정을 방황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붓다는 “길 잃은 사람에게는 생(生)의 방황이 끝이 없다”고 하였고 “삶은 성장의 기회로 주어진 것이지 무지(無知) 속에서 삶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이유를 깨닫지 못하면 방황하게 되고 허망(虛妄)한 인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성적인 판단으로 존재하는 이유를 깨닫는다면 인간의 고유한 형상에 상응하는 소명(召命)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은 존재의 이유를 알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으면 해야 할 소명(召命)을 다하지 못하고 공허한 삶을 살아가게 되므로 허무와 후회로 인생의 종말을 맞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식(意識)을 통한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생각으로 생명체의 기능을 관리하고 개별적인 차이를 가지면서 삶의 상태를 주관함으로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혼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우리의 정신세계는 창조적인 생각과 초오감적(超五感的)인 직관과 통찰, 깨달음, 神내림 같은 기능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영혼의 존재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 속에 깃들어 마음을 움직인다고 여겨지는 물질이 아닌 무형의 실체”인 영혼이 의식(意識)을 통해서 해야 할 소명(召命)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면 하늘에 뜻에 따라 주어진 존재이므로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깨닫고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사는 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과의 솔직한 만남인 명상에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서 사는 존재인가를 확실하게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삶의 수단과 방법이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이유는 물질만능주의로 사는 것이 아니고 이념적 사상으로 사는 것이 아니며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 욕심의 노예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기 존재하는 이유는 모든 것을 걸고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받은 생명의 소명(召命)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눈먼 삶이 될 수 있고 짐승처럼 살다가 버려지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피땀을 흘리고 아등바등 산다고 해도 우리는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받은 생명의 은혜에 보답하는 사랑과 봉사로 생명의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존재이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존재의 이유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아귀다툼으로 산다면 영혼을 슬프게 하는 허무와 후회로 종말을 맞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존재이유로 사는 가치(價値)를 뒷전으로 하고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욕심을 채우는데 혈안이 되어 살다 보면 패품 처럼 버려지는 종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모상인 영혼이 해야 할 소명(召命)으로 사는 것이 존재이유입니다.
草人 奉 俊 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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