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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칼럼

독서의 계절

  • 조창희  (cho3029)
  • 2023-10-05 0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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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영화 <혹성탈출 : 종의 기원>의 마지막 장면은 제게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인간과의 최후 전쟁에서 승리한 유인원들과 함께 떠나는 소녀의 모습은 복잡한 감상을 불러 일으켰지요. ‘시미안 플루라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해 인간들은 지능이 퇴화되면서 결국 언어 능력조차 상실하게 되는 반면 유인원은 오히려 진화하는 과정을 그 소녀를 통해 봅니다. 지난 3년여 겪은 코로나19가 준 고통과 피해는 너무나 크지만 이 영화의 바이러스는 영상문화에 밀려나는 독서의 은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전자책을 비롯하여 다양한 읽기가 널리 활용되고 있는 상태에서 지능이 퇴화되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걱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유튜브는 참으로 마술 상자와 같습니다. 알고 싶은 무엇인가를 입력하면 관련 영상들이 끝도 없이 흘러나옵니다. 아니, 이렇게 많은 방송인들이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요? 정치, 시사, 요리, 운동, 여행, 음악, 영화, 건강 관리등 생활의 모든 부분에 걸쳐 다양한 내용들이 눈부실 정도입니다. 심지어 독서를 검색하면 독서법에 관한 온갖 조언들이 주르르 늘어섭니다. 직접 책을 읽어주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책을 읽지 않고는 살 수 있어도 스마트폰 없이는 생존과 적응이 어려운 세상임을 알겠습니다. 그런데도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요? 이 고리타분한(!) 관념은 농경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가을 수확이 끝나고 난 뒤에는 여름이나 겨울과는 달리 선선해서 책 읽기에 좋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통념에는 몇 가지 간과된 사실이 있습니다. 즉 당시에는 문맹자가 많아서 직접 읽기보다는 구전을 통해서 듣는 것이 보편적이었다는 것, 인쇄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고 종이 또한 부족해서 책의 종류와 수량이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것, 조명이 거의 없어서 해가 지고 나면 사실상 글을 읽기 어려웠다는 점 등입니다. 1970년대까지의 우리나라 역시 많은 지역에서 호롱불을 사용했고 그마저 아껴야 했으므로 저녁 8시쯤에는 온 동네가 캄캄해지곤 했지요.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니! 그야말로 넉넉한 사람들의 호사일 뿐이었고 오죽하면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말이 다 나왔을까요?

 

요즘은 정반대로 풍요가 넘쳐납니다. 경제발전과 함께 의무교육이 폭넓게 시행되면서 우리의 기본 문맹률은 1%에 불과하다고 하고,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 한숨이 나올 만큼 책은 무한하게 쌓여 있으며, 전기불빛은 어디서든 24시간을 밝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심심(甚深)한 사과소동이 일어났습니다. SNS에 올라온 사과문에 하나도 안 심심하다는 댓글이 달려 문해력 부족을 드러냈다는 지적과 함께 사흘간‘4로 생각한다는 사례도 제시되었습니다. 한편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게 센스있게)’이라는 신조어를 통해 문해력보다는 세대 간의 언어 단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요.

 

뇌 연구 전문가들은 영상에 의해 자극받는 뇌 부위와 문자에 의해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다르므로 균형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우리의 두뇌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라 인공지능이 많이 발전했다 해도 여전히 근접하기 어려운 비밀을 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뇌 과학에 따른 조언을 받아들일 여지는 충분하겠지요.

 

사이버 세상에도 여러 형태의 독서모임이 있고 개인 블로그에 읽은 책을 열심히 올려놓는 이들도 많습니다. 인간은 어쨌든 읽고자 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을 읽고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생각과 행동도 달라집니다. 영상으로 남겨진 경험은 감각적이지만 문자로 기록된 것은 좀 더 이지적일 수 있습니다. 감성과 이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노력이 점점 벌어지고 있는 세대 간의 틈을 조금이라도 좁혀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체로 문자보다는 영상 매체에 기울어 있습니다. 또한 sns로 인해 문장의 길이도 점점 짧아지고 있어 감각적인 반면 긴 호흡의 생각은 점점 어려워진다고도 합니다. 특정한 사회 현상에 대해 휩쓸리는 주장이나 의견들을 보면 씁쓸함과 함께 과연 세상이 기술발전이 주는 편리성만큼 좋아질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합니다. 지나가는 화면을 바라보는 것은 쉬운 만큼 수동적인 만족을 줄 것입니다.

 

영상과 문자의 균형을 잃어버린 정신은 히틀러의 분서(焚書)에서 보듯 건전한 시민조차도 독재에 종속되거나, 영화 <혹성탈출>의 인류처럼 언어와 사고능력의 점진적인 소멸을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너무 먼 미래라서 실감하기 어렵다고요? 책이 사라진 세상이 과연 좋기만 하겠습니까?

 

책읽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읽든 그저 단순한 호기심에서 읽든 책은 정신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어줍니다. 때에 맟는 한권의 책은 고단한 인간의 정신을 깊이 있게 위로해주고 필요한 지식을 통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할 것입니다. 그 안에는 누군가가 겪은 시간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프랑스 작가 볼테르는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며 그 세계는 책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물론 유튜브가 없던 세계에서 그랬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함을 누리는 지금 세상에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책만 펼치는 것은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요! 여행을 떠나요, 한 권의 책을 들고서.

 

조 창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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