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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우리 나라는 유달리 족보에 대한 애정이 지나쳐 집착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강한 것 같습니다. 제사를 성대하게 지내는 것도 그와 관련이 있겠지요. 이런 관념은 특히 ‘가문의 명예’란 알량한 주제어로 많이 제시되곤 하는데, 이때의 명예란 봉건 유교 관점에서 ‘ 지위나 권력을 차지함으로써 이름깨나 날리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사전은 명예를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이나 자랑, 또는 그런 존엄이나 품위’로 설명하면서 그 용례로 ‘명예를 높이다.’를 보여줍니다. 즉 身體髮膚(신체발부)와 마찬가지로 조상으로부터 받은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것인데, 언제부터인가 매우 세속적인 기준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이름도 몰라 성도 몰라’라는 가사가 제법 입에 오르내리는 가요 <댄서의 순정>을 들을 때마다 그 시대의 흐릿한 풍경 위로 애달픈 삶을 살다간 무명의 한 사람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개인화가 진행되고 나아가 비접촉공간인 사이버 세상이 만남과 소통의 주된 통로가 되면서 사람들은 닉네임이라는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익명의 사이버 공간에서 우리는 닉네임으로 다른 이들에 대한 감정을 나타내고 서로를 느끼면서 알아 갑니다. 작명에 따른 재미와 익명성이 주는 여유로 새로운 자유로움을 맛봅니다. 하지만 실제의 자신은 숨겨져 있어 인격과 품위를 판단할 수 없고 ‘이름도 성도 나이도’ 모르는 얼굴과 목소리가 실제를 대신하는 현상은 역시 인간의 악한 일면을 드러내어 부작용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악플을 달아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무책임과 무자비는 자극적인 만큼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요. 이것은 가면 뒤에 숨어 부끄러움을 잊어버린 일탈과 흡사합니다.
종종 사용되는 名不虛傳(명불허전)이라는 말은 헛되이 알려진 이름이 아니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 탁월한 성취를 이룬 존재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처럼 예로부터 이름은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개인과 시대의 모습을 담아 왔습니다. 하지만 미디어의 발달로 지금 사회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법칙이 일상처럼 작용하고 있어 선한 이름보다 나쁜 이름이 쉽게 사람들의 뇌리에 새겨지고 있습니다.
온갖 법률을 위반하고도 감언이설로 자신의 죄상을 변명하면서 버젓이 실명으로 거론될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얼굴을 내미는 악인 열전을 보노라면 혐오감과 함께 과연 이 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돈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욕망들이 난무하면서 名虛崇傳(명허숭전), 헛된 이름이 높임을 받으며 전승되는 고담시의 모습이 너무 거대해져서 착하고 예쁜 닉네임들이 주는 기쁨과 희망을 잠식합니다. 이런 현상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자기 이름과 역할에 걸맞는 도덕과 용기를 지닌 시민들의 각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인간다운 멋과 품위를 잃어버린 잿빛 세상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진실과 사랑을 담은 한 마디의 말이나 한 줄의 글로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의지하며 미소와 여유로움으로 다가서는, 제대로 이름값 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조 창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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