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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내가 더불어 사는 의미(意味)
내가 아닌 너는 나의 이웃입니다. 이웃은 내가 살아가면서 접촉하는 사람입니다. 이웃은 종속(從屬))의 관계도 아니고 조건부의 관계도 아니지만 나와 같은 생명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고 비물질로 부터 사람의 고유한 형상이 주어져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유한 형상인 영혼에 근거하는 의식(意識)을 통한 생각에 의해서 생명을 유지하고 개별적인 차이를 가지면서 삶의 상태를 주관하고 사는 것입니다.
삶을 주관하는 의식(意識)은 창조적인 생각과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초감각적 지각(직관 , 통찰 , 깨달음 , 영매, 神내림 등)의 기능을 합니다. 이러한 정신기능은 물질에서 나올 수 없는 기능으로 하느님의 모상(貌相)을 닮은 영혼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기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에 근거한 의식(意識)을 통한 생각에 의해서 의식주(衣食住) 문제를 해결하고 자식을 낳고 키우며 선(善)함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식 기능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고유한 형상인 영혼(靈魂)은 하느님의 존엄성에서 주어진 것이므로 하느님의 모상으로 존엄성을 지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존엄성에 근거한 생존권과 인권을 지니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엄성은 개인의 우월성이나 사회적 직위와 직책 때문에 갖는 것이 아니고 하늘로부터 주어진 형상이기 때문에 존엄성을 지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질은 물질의 능력으로 비물질인 영혼에 의한 의식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접촉하는 이웃은 하느님의 존엄성에서 주어진 하느님의 백성으로 존엄성을 지닌 이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웃은 영혼에 근거한 의식 기능으로 서로 돕는 호혜(互惠)로 생활을 하고 운명을 같이하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과 상관이 없는 것처럼 구경꾼으로 살지 말아야 하고 이웃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하고 어떠한 손해를 끼쳐서도 안 되는 것이며 어떠한 차별도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웃은 하느님의 존엄성에서 주어진 하느님의 모상(摸象)으로 존엄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의미는 하느님의 존엄성에서 주어진 생명의 의미를 깨닫고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붓다는 “길 잃은 사람에게는 생(生)의 방황이 끝이 없다”라고 하였고 “삶은 성장의 기회로 주어진 것이지 무지(無知) 속에서 삶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웃의 생존권과 인권에 상처를 주는 것은 생명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고 생명을 주신 분에 대한 배신이며 짐승처럼 사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안에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 하고 있으므로 이웃에게 아픔의 상처를 주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도전이고 월권입니다. 묵자는 말하기를 “혼란의 근원은 자기만을 사랑할 뿐 서로 사랑할 줄 모른다는 데 있다”라고 했고 자애(自愛)로 철리(哲理)를 여기면 반드시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피땀을 흘리고 아등바등 살아도 우리는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는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삶의 의미를 망각하고 사는 것이고 생명을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기도를 하시길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마태6장9-10)라고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함께 하고 있으므로 너와 내가 더불어 사는 의미는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태10/8) 는 하늘의 가르침이 있는 것입니다. “거저 주라”는 하늘의 가르침은 조건 없는 사랑과 무소유와 자원봉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것은 거저 주어진 생명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은 관용과 온정을 베푸는 것이고 무소유는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해방이며 자원봉사는 자신의 체면을 치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의 어려움을 돕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웃이 행복하도록 돕고 사는 것이 거저 받은 생명으로 사는 삶이고 죽음을 향한 숙명으로 사는 삶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길이 힘겨운 여정이라 해도 주어진 생명의 은혜에 감사하고 사랑과 봉사로 보답하는 삶을 사는 것이 더불어 사는 의미입니다.
草人 奉 俊 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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