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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칼럼

AI도 자비를 안다고?

  • 조창희  (cho3029)
  • 2024-11-05 06: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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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소설 <흥부전>에는 흥부가 뱀의 공격을 받아 다리를 다친 새끼 제비를 고쳐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동물까지도 사랑하는 흥부의 마음은 요즘 반려자로까지 승격된 개와 고양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생명체에 대한 집착(!)에 비하면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인간 마음에 내재된 선함의 표상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지금의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그로 인해 부자가 되었다는 것일까요?

 

많은 종교들은 이런 생각들을 경전으로 체계화시켜 인간 사회에 심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인간 본성에 관해 성선설과 성악설로 이원화시킨 철학도 있지만, 종교는 인간의 악한 측면을 제어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요구되는 일종의 약속을 신성하게 세워나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집단의 규모가 커지고 이해관계가 끼어들면서 인간의 마음 역시 변질의 함정에 빠지곤 했습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이 벌어지고 그 갈등 속에 무수한 희생이 따르기도 했지요. 오히려 신앙이라는 깃발 아래 벌어진 사건들은 물리적인 영토 다툼보다 더 잔인하고 냉혹했던 적이 많습니다.

 

영화 <와일드 로봇>은 도우미로 제작된 인공지능 로봇이 사고로 밀림에 추락하면서 시작됩니다. 주인공 로봇이 실린 비행선이 기러기 둥지로 떨어져 막내(로 추정되는) 알 하나만 남기고 모두 깨져버립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면서 처음 본 존재를 엄마라고 생각한다는데, 이 영화도 그렇게 인공지능 로봇이 새끼 비둘기의 엄마 역할을 하며 성장시키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로봇도 모성애를 느낄 수 있다는 가정은 참 대담하지요.

 

불교에서 자비는 단순한 감정이나 태도를 넘어, 실천을 통해 발현되는 덕목입니다. 모든 존재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연민을 실천함으로써 자신과 타인 그리고 우주 전체와의 관계를 조화롭게 구축하는데 큰 기여를 합니다. 자비를 쉽게 이해하는 비유 중 하나는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에 대해 가지는 그 무한한 사랑과 보호본능은 자비의 본질을 잘 나타냅니다. 기독교에도 사랑이라는 덕목이 있습니다. 단어만 다를 뿐 비슷한 뜻을 담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의 문제는 자비와 사랑을 말하면서 정작 그 모습을 잘 보여주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고아와 과부를 잘 돌보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오늘날 독거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자녀들이 성경대로 산다면 이런 문제는 많이 줄어들겠지요. 종교인들도 자기들끼리만 돌보고 교류하는 이기적인 집단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믿는 자들이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 못지않게 우선 가정 내에서 믿음을 실천할 때 사회의 기초가 탄탄해지지 않겠습니까?

 

자비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자 생명체로서의 동질감에 공감하는 것입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의 아주 조금만이라도 사람에게 쏟는다면 좀 더 살아갈 만한 세상이 될 터인데, 현대 사회는 인간 아닌 존재를 통해 위안을 얻어야 할 만큼 불안정한 사회가 되었을까요?

 

와일드 로봇이 기러기 새끼를 키워내고, 혹한 속에서 고통을 겪는 동물들을 위해 헌신하며, 숲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앞장선 마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으로 서로 죽이고 다치는 우리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서로를 사랑하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미워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자비와 사랑이라고 여겨야 함은 참 슬픈 비극입니다. 일본의 잇큐 선사는 정상 향하는 산기슭 갈라진 길 많고 많지만, 바라보는 하늘의 달은 하나뿐이라고 했습니다.

 

이념, 종교, 성격 등 온갖 이유로 갈라진 인간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조 창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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