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커뮤니티 > 무진칼럼
인생이란 무엇인가? 숱한 사람들이 묻고 답을 제시했지만 인생이란 ‘이것이다’ 또는 ‘이런 것이다’라는 식의 궁극적인 정의를 찾기는 어렵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저마다의 경험을 가지고 답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관 또는 삶의 태도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삶의 단계나 하는 일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분명한 지향점(성공이라는)에 도달하려면 지켜야 할 것이 반드시 있습니다.
<흑백 요리사> 방송이 끝난 얼마 후 안성재 셰프는 인터뷰에서 ‘요리사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인내심이죠. 성실한 사람만이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내심이 있어야 대충 하자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어요."
이것은 사실 요리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 일의 중요성과는 관계없이 무슨 일이든 크고 작은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당장 눈앞에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조급해하면서 정작 필요한 노력과 끈기가 없다면 이룰 수 없음은 당연하지요.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않고, 성공했다고 지나친 기쁨에 도취되지 않으면서 꾸준히 정진하는 것만이 완성도 높은 결정체를 만들어 냅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은 바느질과 같다고 말하고 한 바늘 한 바늘씩 늘려가다 보면 옷이 만들어진다고!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사람들의 일화를 보면 환경을 극복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안락한 상태에서 탄생한 명작은 없습니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그 과정은 또 다른 형태의 고통을 이겨내야 했을 것입니다. 따스한 햇볕도 하나의 초점에 모아질 때에만 불꽃을 피우듯
하지만 성취만이 전부는 아님도 경계해야 합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물신 숭배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한병철 교수는 성공을 향한 긍정심리의 과잉을 비판합니다. ‘시스템의 최적화와 완전히 부합하는 부단한 자아 최적화는 파괴적’이라면서 신자유주의에 사로잡힌 현대 문명이 스스로 디지털에 갇히는 병폐를 지적함으로써 물러섬 또는 진정한 느림의 철학을 말합니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이상향을 찾아왔고 믿음에 따라 천국이라고 극락이라고도 하는 곳. 종교들은 이 땅에 그런 곳은 존재할 수 없다고 여겼는지 내세를 강조하며 죽음 이후의 삶(!)을 말합니다. 과연 그러한가?
인간의 조건은 평온한 일상들 사이에 비극과 참상이 끼어 있습니다. 소소한 범죄부터 거대한 전쟁까지 죄악들은 날마다 어디선가 자행되고 있으며, 어떤 힘도 이런 모순과 불합리를 완전하게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은 항상 고민거리였습니다. 성선설과 성악설의 논리적 대립은 그래도 희망을 갖고 살아보자는 절박한 외침의 하나 아닌가요
인생의 길에 ‘나만이 옳다’는 강력한 주장은 전체주의 또는 파시즘을 등에 업고 무모한 만행으로 수많은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역사에 기록된 사실을 통해 영웅이라고 알려진 대다수의 사람들은 또한 살인자이기도 하다는 모순. 오늘날은 훨씬 교묘하고 드러나지 않는 인격 살인의 형태로 권력과 금력을 쥐려는 야망들이 넘쳐납니다. 그 이면에는 패배자로 전락한 다수의 군상들이 있지요
하지만 어떤 인간의 법칙도 자연을 견디지는 못합니다. 계절의 변화처럼 인생에도 榮枯盛衰(영고성쇠)가 있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날 것임에도 分福(분복)을 넘어 탐욕스러운 세태는 많은 길을 뒤틀리게 합니다. 인간성에는 본래 약점과 한계가 있으므로 우리 모두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도록 올바른 가치를 세우는데 마음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조 창 희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