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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칼럼

아침 이슬과 같은 말

  • 조창희  (cho3029)
  • 2025-04-05 08: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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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이유는 다르겠지만 참 피곤하고 외로운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입니다. 저출산으로 인구는 줄어드는데 그 공백을 반려동물로 채운다는 분석도 있지요. 코로나19로 격리되고 학교에 가지 못한 학생들은 소통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합니다. 사람은 언어를 통해 의사를 주고 받으며 표정을 보며 교감을 하는 동물인데,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상황은 사회의 많은 부분을 너무나도 급격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불과 20~30년전만 해도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의 소통은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버스나 기차를 타면 무거운 짐을 든 사람의 짐을 받아주면서 인사도 나누고, 낯선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곤 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전철 안에서는 각자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봅니다. 아파트 내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이웃도 인사하기에는 어딘가 어색하여 머뭇거리게 됩니다.

말이 사라져가는 세상입니다. ‘한 마디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 ‘말 한 마디에 사람이 살고 죽는다.’ 이런 짤막한 격언이 명언으로 받아들여진 배경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사실 말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갑자기 튀어나온 두 마디나 세 마디나 네 마디 말, 그 자체로는 단순한 말,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때문에 흥분합니다. 그 말이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살갗을 뚫고 겉으로 튀어나와 우리 감정의 평정을 흩트려 놓는 것을 보며 흥분합니다.

눈먼 자들의 세상에서 저자 주제 사라마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신경은 삶의 과정에서 많은 것을 견디도록 단련되지만, 감정은 호시탐탐 그 갑옷의 틈새를 뚫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슬이 아침에 식물을 적셔주듯 좋은 말로 사람의 마음을 촉촉히 적셔준다면 듣는 사람은 생명수를 공급받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한 마디의 좋은 말은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때로는 사람을 살리기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통제받지 않는 감정의 폭발은 아무리 인격적인 사람도 어쩔 수 없는 지점이 있습니다. 절제는 필요한데, 좋든 나쁘든 필요 이상의 분출이 되지 않도록 관리하지 않으면 자칫 감정의 노리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하게 표현하되 진폭은 어느 정도 제한함으로써 과잉을 억압하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는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더 나은 것은 인류 보편의 감정과, 이를 값싸게 자극하는 감성팔이를 구분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의 지혜와 지성입니다. 소망을 주는 말, 이슬과 같이 유익을 줄 수 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소망을 주는 말은 진실되어야 합니다. 온갖 미사여구로 우유보다 매끄럽게 말을 할지라도 진실되지 못한 말은 결국 상대를 찌르는 비수가 됩니다. 참과 거짓을 구별하고 서로 믿을 수 있는 관계를 위해서라도 진실된 말을 하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조 창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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