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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칼럼

효도와 고려장

  • 조창희  (cho3029)
  • 2025-07-05 08: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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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의 풍속은 그 환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50년 전만 해도 아이들은 주로 바깥에서 친구들과 이런저런 놀이를 하면서 지냈습니다. 고무줄 놀이, 땅따먹기, 딱지치기 등. 그런데 지금은 주로 혼자 방 안에서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지요. 경제 성장과 함께 누리게 된 물질적 풍요, 문화적 다양성에의 손쉬운 접근 등이 만들어낸 변화입니다.

 

요즘 특히 눈에 띄는 현상의 하나로 반려동물이 크게 늘어난 모습을 들 수 있습니다. 동네마다 산책길에서 조금 심하게 말하면 사람 반 동물 반입니다. 2024년 기준 약 1,500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으며 이에 따라 관련 시장의 규모도 커지고 있습니다. 국내 반려동물 시장은 2023년 기준 약 6조원, 펫 보험 계약 건수도 2022년에 비해 49% 증가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1인 가구가 전체의 35.5%로 늘어났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을까요?

 

한편 인간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장수가 더 이상 축복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건강이나 부양에 따른 경제적 부담, 또 노인 스스로 삶을 꾸려가야 하는 현실 등은 점차 심각해지겠지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사망했던 옛날에도 그런 문제가 있었던가 봅니다. 늙어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산 채로 산이나 들에 내버리는 고려장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당시에도 고령화에 따른 고민이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아마존 일부 유목 부족들은 지금도 나이 든 노인을 3일분의 식량과 함께 두고 떠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부모가 늙어서 산 채로 지게에 지고 가 산에 내버렸습니다. 함께 갔던 그의 아들이 지게를 도로 가져오려 하자 아버지는 이를 말렸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자신도 후일 아버지가 늙으면 그 지게에 져다 버려야 하니까 지게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자신의 불효를 깨닫고 다시 늙은 아비를 모시고 집으로 왔고 이로 인해 고려장이 없어졌다는 설입니다. 효도 윤리를 가르치기 위한 교육 수단이었겠지만 당시에도 고령화의 사회적 문제를 나타내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나이 들어 생활 능력이 부족해지는 노인의 실상은 우리 모두 겪어야 할 종착역입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화된 일본에서 보듯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린 자녀들과 연로하신 부모님을 동시에 보살피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현대 사회는 요양원이라는 제도를 통해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합니다. 요양원은 노후 일상생활을 케어해주는 시설입니다. 돌봄 부담을 덜어 주고 의사, 간호사, 요양사들의 전문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비용 때문에 망설이는 경우도 있다지만 자식을 위해 헌신한 부모님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마땅히 감수해야 할 일 아닐까요? 더구나 국가에서 일정 부분 지원하는 만큼 조금의 진정성만 있으면 기꺼이 돌봐드릴 수 있습니다.

 

그와는 별개로 지금 세대는 자신이 스스로 노후를 대비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경제 규모는 커졌는데 도대체 삶은 왜 더 팍팍해졌는지 살펴볼 필요도 있겠으나, 어쨌든 지금은 과거처럼 자녀들에게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유 중 하나가 자식에게 너무 많은 돈을 쓴 것이라고 합니다. 자식 키워 놓으면 그 자식들이 부모를 봉양하던 농경시대 관습의 그림자입니다. 지금은 가족이 뿔뿔이 헤어져 핵가족이 되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이전과 같은 관계는 거의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 반려동물 문화입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동물들에게 투사되는 것이지요. 요즘 반려동물들은 가히 천국 같은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개 집사, 고양이 집사의 시중을 받으며 웰빙족으로 비만을 걱정할 정도라니요. 그 집사님들의 모습에는 엄청난 사랑이 빛납니다. 영양을 고려한 다양한 음식(먹이!)을 제공하고, 패션을 방불케 하는 계절별 옷가지들을 입히며, 날마다 산책시키고 씻기는 정성을 보면 성인군자가 따로 없습니다. 개 우비와 신발, 승용차로 등하원시키는 유치원까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부모에게도 그만큼의 마음으로 섬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일부에서는 자기 자식들에게는 하고 싶은 것 다 해주면서 부모님의 필요나 고통에 대해서는 건성으로 흉내만 내며 돈을 아까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내리사랑에 미치지 못하는 치사랑이라고 해도 이 정도면 과연 인간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낳고 길러 주신 부모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둔다면 그분들의 노후에 대해 최소한 반려 동물에게 베푸는 관심만큼은 가질 때 좀 더 인간다운 인간이 되겠지요. 여러 가지 형편으로 어렵다고 해도 하루 한 번 전화로 안부를 여쭙는 것은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닙니다. 개나 고양이에 쏟아붓는 시간과 비용의 절반만 들여도 부모님들은 충분히 배려받는다고 생각하실 텐데 참 쉽지 않습니다.

 

과거 고려장의 지게는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개진상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개이득의 상징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부모에 대한 우리의 행동을 배운 후 그대로 따라 할 자녀들이 있다면 더욱 그렇겠지요.

 

조 창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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