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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각자 자신의 주관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며 일생을 보냅니다. 공부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나이 들어가면서 경제 활동과 가사 노동과 이에 부수되는 일들을 스스로 결정한다고 대개는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가스라이팅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에서 보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작용들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이런 삶을 두고 불빛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실체로 인식하는 어리석음, 즉 동굴의 우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외에도 종족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 있으며 이러한 우상들을 극복해야만 진정한 지식에 이를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처음 백화점이 등장했을 때 창문을 만들지 않은 것, 시계를 두지 않은 것은 소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려는 광고 심리학의 교묘한 장치라지요. 요즘 우리의 여가 생활을 지배하는 유튜브나 드라마는 어떻습니까? 자발적으로 시간을 허비하며 그 알고리즘에 말려 들어가면서도 저항감을 크게 느끼지 못합니다. 신이 섬기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세련미를 갖춘 우상들은 훨씬 더 은밀하게 일상에 깊숙이 침투하여 현대인의 시간과 에너지, 마음의 우선순위를 잠식합니다. 더 이상 돌이나 나무로 만든 신상의 형태가 아니라 ‘물질적, 정신적 결핍을 채워줄 것 같은 가짜 약속’의 형태로 스며드는 현대 사회의 우상(Idol)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첫째, 물질과 소비.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을 사고 나아가 명품을 소유함으로써 가치를 증명하라고 합니다. “이것만 가지면 더 행복하고 우러러보이는 사람이 될 거야.”
둘째, 성공과 성과. 더 높은 위치를 바라보며 일에 집중하라.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통해 목표를 성취하라. 행복은 바로 거기에 있으리라.
셋째, 안락과 편안. 고통 없는 상태만이 진정한 쉼이므로 모든 불편함을 피하고, 즉각적인 쾌락(OTT, 게임 등)에 몰두해도 좋다고 유혹합니다.
넷째, 디지털 페르소나. SNS의 ‘좋아요’와 조회수에 일희일비하며 완벽한 모습을 연출해야만 존재가 인정받는다는 강박관념이 퍼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우상들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내 시간의 방향, 감정의 극단, 돈의 우선 순위, 생각의 자율성 등에 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됩니다.
“나의 자유시간(Discretionary time)이 가장 많이 흘러가는 곳은 어디인가?”
“그것을 얻지 못하거나 잃었을 때, 단순한 슬픔을 넘어 ‘존재의 위협’이나 ‘통제 불가능한 분노’를 느끼는가?”
“나의 가계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감정적 지출은 무엇인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을 때, 나의 마음은 본능적으로 어떤 공상이나 걱정으로 향하는가?”
이 네 가지 우상을 식별하게 해주는 장치를 ‘레드 플래그(Red Flags)’라고 합니다.
우상들을 섬기는 큰 원인 중 하나는 자기 중심주의에서 비롯됩니다. 부지불식간에 ‘자아(Self)’를 신으로 숭배하는 현상의 일단은 물질주의와 외모에 대한 집착, 이를 부채질하는 오염된 문명의 쓰레기들에서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의 강력한 작용은 단순히 ‘하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한다고 해서 사라질 수 없습니다. 우상이 차지한 마음의 자리를 다른 가치로 대체해야 합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작은 봉사나 기부, 타인을 돕는 행위를 통해 비대해진 자아의 우상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무목적적 친절’이야말로 삭막한 현대의 단절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토대입니다.
일주일에 단 하루, 혹은 하루 중 몇 시간이라도 모든 기기를 끄고 디지털 우상이 주는 소음에서 벗어납시다. 내면의 진실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디지털 안식일’은 정보로 가장한 채 다가오는 쓰레기들의 함정에 걸려드는 태만함을 직시할 수 있게 해줍니다. 걸을 때조차 귀에 이어폰을 꽂고 사는 현대인들의 정신에 ‘연결되지 않을 자유’는 꼭 필요한 일입니다.
결핍을 자극함으로써 충동적인 구매로 끌어들이려는 우상에 대해서는 ‘늘 부족함’의 사고 대신 감사할 일을 기록하며 가진 것들에 집중하는 연습을 통해 저항해야 합니다. ‘더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이미 충분하다’는 자각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네게 준 복이 충분하다”고 하셨음에도 그분의 제자라는 자들조차 더 많은 권력과 재물에 욕심을 냈습니다. 중세의 종교 권력이나 오늘날 종교의 팽창은 인간의 탐욕은 신조차 멈추기 어려운 폭주 괴물임을 입증하는 것 같습니다.
성공이나 돈은 삶의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면서도 우리들은 그것이 최종 목표이며 자기 완성의 최후 단계라고 굳게 믿습니다. 때만 되면 종교단체들은 행사를 개최하고 이런저런 기도의 명분들로 돈을 거둬들입니다. 사람들이 절에서 소원을 비며 기도하는 관음상을 나쓰메 소세키는 ‘나무 토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죽음 앞에서 기억하고 싶은 가치(사랑, 진실, 평화 등)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성찰하며 우상이 차지했던 삶의 우선순위를 재편해야 합니다. 혹시 지금 당신의 마음을 가장 괴롭히거나 흥분시키는 무언가가 있다면 혹시 우상은 아닌지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조 창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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