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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사랑하라”는 의미
우리가 사는 것은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고 살게 된 원인(原因)이 있어서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날 수 없듯이 우리가 사는 것은 우리의 뜻과 관계없이 영(靈)과 육(肉)의 생명이 주어 저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肉)은 부모로부터 주어진 것이고 비물질인 영(靈)은 비물질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질은 고유 능력 이상으로 비 물질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물질로부터 주어진 비물질인 영(靈)은 사는 동안뿐 아니라 내세에까지 존재하는 형상적(形象的) 실체(實體)입니다.
왜냐하면 비물질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웃은 생명을 주신 분의 사랑이 함께하는 우리와 같은 동종(同種)동류(同流)입니다. 왜냐하면 이웃은 하늘의 뜻에 따라 조건 없는 사랑으로 주어진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이 우리의 이웃들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비물질인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으로 고유한 형상인 영(靈)이 주어 저서 사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주어진 생명의 의미를 모르고 사는 눈먼 삶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늘로부터 받은 조건 없는 사랑에 부응(副應) 하는 삶입니다. 왜냐하면 석고상이 존재하는 원인은 석고상을 만든 재료(材料)가 아니고 상징하는 형상(形象)이 석고상으로 존재하는 원인이듯이 인간이 존재하는 것도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으로 주어진 고유한 형상이 인간으로 사는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존재(存在) 하지 않았을 때가 있었듯이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의 고유한 형상인 영(靈)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존재할 수 없는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머물다가 하느님에게로 돌아가는 숙명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명재천(人命在天)이고 생사재명(生死在命)의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주어진 생명으로 사는 의미이고 소명(召命)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살라는 명령으로 생명(生命)이 주어져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질곡(桎梏)의 진흙탕 속에서 생명의 의미를 실현하려는 멍에를 짊어지고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주어진 생명의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기 위해서 주어진 생명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것을 소유하고 산다고 해도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생명의 의미로 사는 삶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묵자는 말하기를 “자애(自愛)로 철리(哲理)를 어기면 반드시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게 된다.”라고 했고 “자식이 자기 몸을 애지중지하면서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고 사는 것은 이기적인 욕심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으면 베풀 수 없는 것이고 이웃이 나에게 무엇을 주는가가 기준이 되고 욕구 달성(慾求達城)에 삶의 의미를 둔 이기적인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이고 내가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주어진 생명의 의미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태10/8) 는 삶으로 생명의 의미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이웃이 나에게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관계없이 조건 없는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웃은 하느님의 존엄성(尊嚴性)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하느님의 모상(貌相)으로 존중받아야 할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회복지(社會福祉) 사업은 이웃의 존엄한 삶을 위한 조건 없는 사랑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상낙원을 건설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욕심을 채우려는 의도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생명으로 사는 삶은 이웃에게 베풀고 희망을 주는 삶으로 생명의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울리는 꽹가리 소리에 지나지 않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거저 받은 생명으로 사는 삶의 의미는 거저 주는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사랑을 하지 않으면 생명의 의미를 이룰 수 없고 아무런 결실 없는 미완(未完)의 인생으로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 없으면 존엄한 삶을 위한 봉사가 형식적일 수 있고 생명을 주신 분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생명으로 사는 삶의 완성(完成)은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草人 奉 俊 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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