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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容恕)를 하는 이유
용서는 상대의 잘못을 너그럽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용서를 하지 않으면 상대의 잘못으로 고통을 겪게 되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혀 괴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분노와 적개심으로 산다는 것은 상대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서 편안한 잠을 잘 수 없고 심적(心的) 고통 속에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용서를 하지 않으면 분노(忿怒)와 적개심으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불행한 기억을 떠올리고 되새김질하는 것은 스스로 감정의 노예가 되어 고통을 자처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대의 잘못 때문에 내 존재가 억울하고 비통해졌다고 착각하며, 미워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통함에 묶여 용서하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분노와 적개심으로 자해(自害)하는 것입니다.
장자는 “다툴 대상이 없으면 싸울 일도 없고 분노할 일도 없다”고 했습니다. 증오의 대상을 마음속에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용서를 하지 않으면, 이미 끝난 일인데도 ‘그 사람’과 ‘그 일’이 내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를 하는 이유는 상대가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화가 함께하는 삶을 위해서는 없던 일로 하는 용서를 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랑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치료제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평화는 용서의 문을 통해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용서는 상대의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원망과 복수심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마음의 평정을 위해서 하는 것이므로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평생 지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과거의 어떤 일 때문에 받은 상처를 관대하게 없던 일로 처리하는 마음 청소이고 자신의 존재(存在) 가치(價値)를 분노에서 찾지 않겠다는 정신적인 선택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방어하기 위해서 복수를 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분노의 감정에 매달리면 평화가 함께하는 삶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듯이 하늘의 사랑과 축복이 분노나 적개심과 함께할 수 없으므로 내가 용서를 해야 하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메말랐다는 증표이고 과거에 묶여 평화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용서를 하지 않으면 분노와 원망과 억울함으로 괴로움을 겪게 되고 과거에 묶여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평화는 사리를 분별하는 지혜로운 생각으로 용서를 할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감정은 내가 다스려야 내가 평화로울 수 있으므로 용서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적인 고통을 성숙(成熟)의 밑 걸음으로 소화하는 사람이 평화를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를 하는 이유는 상대가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어진 생명의 뿌리가 같은 동종(同種)동류(同類)로 사는 우리는 용서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용서를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를 하는 이유는 마음의 평화를 유지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고 생명을 주신 분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善)과 악(惡)이 공존할 수 없듯이 하늘의 사랑과 축복이 분노(忿怒)와 적개심과 공존할 수 없으므로 용서를 함으로 하늘의 용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용서할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의 ‘그 사람’과 ‘그 일’로 억울하고 원통한 감정에서 벗어나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용서를 하는 이유는 상대의 잘못으로 감정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므로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분노와 원망과 억울함으로 괴로움을 겪게 되고 과거에 묶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감정을 내가 다스려야 내가 평화로울 수 있으므로 용서를 하는 것입니다.
草人 奉 俊 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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