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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아들놈이 어린이날 선물이 무어냐고 묻습니다. “중학생은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란다”하고 지나가 버렸습니다. 잘한 일일까요? 아무튼, 5월은 이리저리 가정의 달이라 해서 지출이 많은 달이기도 합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부담스러운 달이기도 하지요. 그러하더라도 선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교감을 나누는 일은 사람 관계에서 무척 중요합니다.
국민(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지인으로부터 종합과자 선물세트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커다란 상자 안에 가득 들어 있는 과자를 하나씩 꺼내 아껴가면서 동생들과 나눠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마트에 가보면 그 시절 먹었던 과자가 아직도 생존(?)해 있습니다. 마치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이기에 더 맛이 있었겠지요. 또 성당에서 수녀님께 받았던 그림책 선물에 대한 기억도 아직 뚜렷합니다. 처음으로 받았던 책 선물입니다. 지금도 그 책의 내용과 그림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선물은 지금 내 삶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만큼 좋은 선물(膳物)은 한 사람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 위치하기도 합니다.
조선 시대 주요 선물 품목은 쌀, 조, 수수 등 곡식류나 짚신, 옷감, 의복, 바느질 도구 등이었다 합니다. 어떻게 보면 선물을 통해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주고받았다고 할 수 있지요. 그 영향인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설탕, 밀가루, 조미료 등의 선물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제가 받았던 종합과자 선물세트도 1970년대에 들어서 등장한 것이지요. 그 이후로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발동이 걸리며 1980년대에는 다양한 패션잡화, 정육 세트 등으로 고급화되었고 2000년대에는 건강식품, 상품권 등이 인기 있는 자리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기프티콘이나 소용량의 밀키트 등도 인기 있는 선물 품목 중의 하나라도 합니다. 그래도 옛날 선물들에 정감이 드는 건 나도 나이 먹었다는 증거이겠죠?
사실 선물이 쉽고 단순한 것만은 아닙니다. 선물(膳物)이 뇌물(賂物)이 되기도 하고 요물(妖物)이 되거나 악물(惡物)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2016년 김영란법이 발효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분추경리(奔趨競利)와 비슷합니다.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하는 자와 사헌부, 사간원 관리의 자택에는 친인척의 출입을 금하고, 음식을 대접받거나 사소한 선물을 받아도 처벌되는 법입니다. 물론 조선 후기에는 있으나 마나 하게 되었지만요. 김영란법이 발효된 때인 2016 국정감사 자료에도 적발된 공무원 중 실제로 처벌받은 사람은 4.9%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씁쓸하게 만들고 맙니다. 뇌물(賂物)이 된 선물(膳物)은 모두에게 열린 공평한 기회를 일부 집단이 착취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선물(膳物)은 요물(妖物)이 되기도 합니다. 광해군 때 이충은 잡채를 광해군에게 자주 갖다 바치고 ‘호조판서’의 자리까지 오릅니다. 또 임진왜란에서 장수로서 능력을 발휘한 한효순은 광해군(光海君)에게 특제 더덕구이를 바쳐 ‘좌의정’까지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로는 비참했습니다. 지금의 뇌물에 비하면 소박하지만,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음식 이름을 빗댄 놀림거리가 되었고 처벌까지 받게 되었죠. 광해군은 요물(妖物)에 홀려 시류를 읽지 못한 것이 되겠지요.
여기 선물(膳物)이 악물(惡物)이 된 사례도 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영국에서 온 굶주린 청교도들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옥수수 심는 법도 가르쳐 주면서 공존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배를 채운 청교도들은 이교도를 처단한다며 원주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합니다. 그로 인해 원주민과의 전쟁이 일어나죠. 1763년 영국군은 치열한 전투를 치르다 원주민들과 화평조약을 맺습니다. 화평의 선물로 따뜻한 담요를 선물합니다. 하지만 이 담요로 인해 원주민들은 몰살을 당합니다. 지휘관인 엠허스트가 “해충(원주민)들에게 천연두를 퍼트리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주었던 담요는 선물(善物)이 아니라 악물(惡物)이었던 것입니다.
선물(膳物)은 선물(善物)이어야 합니다.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그냥’, ‘거저’ 주는 마음의 표시이어야 할 것입니다. 선물로 이익을 바란다면 나는 더는 행복하지 않게 됩니다. 사실 선물을 고르는 일은 참 힘듭니다. 하지만 그 고민은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받을 사람의 기쁨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물은 설렘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사라진 선물 가게라는 곳에서 용돈을 아껴 카드도 쓰고 포장도 하여 어르신에게 드리면 ‘뭘 이런 걸 준비했냐’는 타박을 들으면서도 행복하고 설렜습니다.
얼마 전 알고 지내는 목사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았습니다. 바퀴가 달린 작은 원목 철제 테이블입니다. 우리 집에 놀러 온 목사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셨나 봅니다. 직접 용접을 하고 원목 판재를 깔아 멋지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는지 모릅니다. 볼 때마다 그분을 떠올리게 되고 미소짓게 만듭니다. 선물(膳物)은 그런 것입니다. 어떠한 목적의식 없이 주어진 선물에 고마움은 더해가는 것이겠지요.
멜로망스의 ‘선물’이라는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가 나에게만 주어진 선물 같아 설렌다는 가사가 이 밤을 행복하게 합니다. 사실 우리는 오늘 선물 같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 이 순간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오늘은 나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이사장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거저 생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도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극심한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평생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경험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내밀하고 아픈 부분들과 접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아픔은 입에만 머물던 사랑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코로나는 나에게 사랑을 선물했습니다.
고통을 통해 이웃들이 나에게 선물(膳物)로 주어졌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중증장애인, 버림받은 이, 치매 노인, 발달장애인들이 나의 친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로 나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해졌습니다. 그 선물은 요물(妖物)도 아니고 악물(惡物)도 아니니까요.
오늘 나에게만 주어진 하루를 예쁘게 포장하고 싶습니다. 나도 다른 이에게 선물(膳物)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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