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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드라마 제목입니다. 드라마 속에서 큰딸은 엄마는 밖에서 외식하는 것을 싫어한다며 고기와 음식 재료를 잔뜩 사 옵니다. 사실 엄마는 자녀들이 돈 쓰는 게 싫을 뿐 외식이 싫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귀찮은 준비과정과 설거지를 감수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지요. 사실 우리에게도 부모님과 관련해서 이런 경험은 무수할 것입니다. 나 역시도 성장기 아이들을 위해 내 입으로 들어가는 맛있는 것들을 아꼈으니까요. 돌아가신 나의 부모님 또한 그러하셨고요. 그렇다고 자녀들이 그걸 알아주는 것도 아닌 것 같습디다.
가족의 중요성에 대한 담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속 언급되고 있으며, 영화나 드라마의 주제로 상처와 갈등 그리고 이해와 화해의 카테고리 안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결혼식장에 가면 사진사가 주례자와 신랑, 신부를 찍고 나면 “신랑 측, 직계가족 나오세요.”, “신부 측, 직계가족 나오세요.”라 외칩니다. 그리고 결혼식장에서 몇 수십 년 만에 만나는 사람들을 향해 “전체 가족 나오세요.”라고 합니다. 옛날 같으면 같은 씨족 집단 안에서 서로의 숟가락 개수를 알 만큼 가까운 사이들이었겠지만, 시대를 지나치면서 행사 때나 만나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 공동체주의적인 담론에서 가족공동체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되었습니다.
고대의 가족 개념은 공동체주의적이었습니다. 로마시대엔 가족을 파밀리아(familia)라고 불렀습니다. 파밀리아(familia)는 일족(gens)과 집(domus) 그리고 그 안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노예도 포함)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또 유대인들의 가족 제도 역시 혼인으로 얽힌 가족뿐 아니라 함께 거주하는 종들과 거주자, 과부, 고아 등 한 울타리에 결속된 모든 이들을 가족이라고 부르고 ‘형제’라 칭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고대의 가족 개념은 혈연을 넘어 공동체주의적인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공동체성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흔하게 발견됩니다.
장가(丈家) 간다고 하지요.
고구려 시대만 하더라도 서류부가제(壻留婦家制) 또는 서옥제(壻屋制)라는 풍습에 따라 신랑은 신부집에서 혼례를 치르고 자녀가 장성하면 신랑의 본가로 가거나 독립을 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도 기혼의 딸이 친정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서류부가에 따라 가족이 외손, 친손 할 것 없이 한데 모여 가구원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도 부모가 아들과는 별거하더라도 딸과는 동거하며 딸이 봉양한 사례는 많습니다. 이러한 풍습은 조선 중기까지도 이어집니다. 이때의 가족 개념은 직계뿐만 아니라 방계 모든 친인척이 가족의 범주 안에 들었던 것입니다. 이를 양변적 방계가족 개념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공동체성은 가족 집단의 권력이 되고 영향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시집간다고 하지요.
조선 중기의 친영제도(親迎制度)입니다. 나라로부터 제도가 바뀌었으니 장가가는 일 없이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신사임당은 친영제도 이전에 결혼해 이원수가 장가 왔으나, 허난설헌은 친영제도 이후에 결혼해 김성립의 집에 시집을 가게 됩니다. 이 제도로 인해 두 여인의 삶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두 여인의 삶은 다음에 다뤄보기로 하죠. 아무튼 친영제도 이후 집안의 권력도 상속도 가계계승자인 적장자가 모두 싹쓸이하게 되었지요. 이후의 가족 개념은 부계중심의 직계가족 개념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공동체성에서 방계는 배제되고 남성 중심의 직계 가족원리가 조선 사회를 지배하게 됩니다. 유교적 부계 중심적 통치 원리가 조선 중기에 이르러 현실을 완전히 장악한 것이지요. 어쩌면 태종 이방원이 어릴 적 자신을 아껴주었던 외삼촌들을 모두 살해한 것도 이런 남성 부계중심의 통치원리에 대한 갈망 때문일 수도 있지요.
결혼(結婚)한다고 하지요.
이제는 개성(個性)의 시대이지요. 공동체성은 사라지고 두 개인의 계약관계 속에 가족을 구성하게 됩니다. 공동체주의적인 담론에서의 가족은 그저 혈연으로 연결된 사람일 뿐 나 자신의 삶과는 무관합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성취와 상처가 더 중요합니다. 따라서 가족이라는 틀이 성가신 가시가 되기도 합니다.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카멜레온 같은 화려한 변신을 보여주면서도 정작 가족에게는 발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내가 아는 것이 많은 시대를 살다 보니 부모의 잔소리는 성가시고, 나의 지침이 더 깊기에 형제의 부족함은 성가십니다. 이해를 하려다 오해하게 되고, 치유하려다가 상처를 더 깊게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묻어버리고 지나가 버립니다. 대화의 단절이지요. 그러면서도 다 아는 듯이 여기고, 그들도 나를 알아줄 것이라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정작 내 아내와 부모님 그리고 자녀들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술 한잔 걸치며 밖에서 만난 친구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긴 했을까요?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만큼 자녀의 관심사를 파악하기는 할까요? 상처를 주지 않으려 상처를 피하다 보니 항상 본질을 비켜나가게 됩니다. 가족의 현상(現像)은 알아도 실상(實像)을 모르니 따져보면 가족에 대해 정말 아는 건 별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가족(家族)입니다.
내 존재가 시작된 곳이 그곳이고, 내가 살아가는 곳이 그곳입니다. 또 내 존재의 소멸을 함께 할 그곳이 가족입니다. 아무리 공동체주의적인 가족의 개념이 희박해졌다 하더라도 우리는 가족을 통해 관계의 기초를 배웠습니다. 달리 말하면 가족을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균열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사랑’을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청하지 않기에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고, ‘몸’을 움직이지 않기에 ‘사랑’은 균열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가족이지만 별로 아는 건 없습니다”란 말이 공감을 얻는 것이겠지요. 오늘 내가 채운 마음의 자물쇠를 풀고 쑥스럽지만 별로 아는 건 없는 가족을 향해 ‘사랑’을 청해봄은 어떨까요?
자물쇠는 내가 채운 것입니다. 그러니 열쇠도 당연히 내가 갖고 있겠지요?
길을 함께 걷는 자-길벗 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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