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커뮤니티 > 무진칼럼

무진칼럼

기독교인(基督敎人)의 삶

  • 봉준석  (adm12m)
  • 2022-11-15 17:38:00
  • hit697
  • vote2
  • 1.245.126.204

기독교인(基督敎人)의 삶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은 예수의 탄생을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를 세상에 도래하게 하였습니다그러므로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를 세상에 선포하기 위해서 오신분이고 세상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소서.”(마태 6.10)라고 기도하신 분입니다그래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속죄(贖罪)의 제물로 십자가의 희생양이 되셨고 부활하심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알게 하신 분입니다왜냐하면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과 함께 선(善)함을 누리는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9)고 말씀하셨습니다이 몸을 바친다는 것은 자기를 버리는 죽음으로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사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 존재하게 된 피조물(被造物)이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거저 받은 생명으로 사는 것은 생명을 주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자기 몸을 바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버리는 죽음 없이는 생명을 주신분의 뜻을 땅에서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루카 9,23)고 했습니다자기를 버리는 것은 책무(責務)를 버리는 것이 아니고 욕심과 애착을 버리는 것입니다욕심과 애착을 버리는 것이 자기를 버리는 것이고 이기적 에고가 죽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하느님과 함께 선()함을 누리는삶을 위해서 욕심과 아집과 위선의 자기를 버리는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버서2/17)는 말씀이 있듯이 예수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죽은 신앙입니다왜냐하면 신앙은 하느님에 대한 의식적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사는 것입니다그래서 예수께서는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마태22:34-40)을 주셨습니다왜냐하면 하느님의 영()이 함께하는 인간에게는 신의 존엄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존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인간다운 삶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궁휼이 여기는 기독사랑의 정신은 사회복지의 근간(根幹)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基督)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고 기독교인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서 구원(救援)을 지향(志向)하는 사람입니다그러므로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를 버리는 죽음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자기를 버리는 죽음 없이는 이웃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자비를 베푸소서>가 아니라 <자비를 베풀고 있습니다.>로 <평화를 주소서>가 아니라 <평화를 전하고 있습니다.>로 기독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는 또 다른 예수로 살아가는 것이 기도교인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으로 사는 전제조건은 에고를 버리는 것입니다에고를 버린다는 것은 자아(自我)가 죽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고 소아(小我)가 대아(大我)로 비약하는 존재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 존재하게 된 피조물(被造物)이고<하느님과 함께 선(善)함을 누리기위하여 주어진 생명이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기독교인의 삶은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사는 것입니다.

 

 

기독인들이 모이는 교회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라 신앙의 공동체와 더불어 의식(儀式)을 행하기 위해서 모이는 곳입니다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살지 않으면서 교회에 다닌다면 요식행위이거나 형식적일 수 있으며 습관이나 체면유지일 수 있고 또는 의례적인 교회행사에 이해관계 때문이거나 위안을 받으려고 다닌다면 기독의 가르침과는 이율배반(二律背反)이고 삶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위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진정 남편을 사랑하기보다는 남편의 수입 때문에 사는 순결치 못한 여인의 사랑이 남편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아니듯이 기독교인이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지 않고 육()의 삶을 위해서 산다면 진정한 기독교인(基督敎人)이 아닙니다기독교인들이 미사에서 그 분과 일치를 이루는 아가페의 성찬(聖餐)을 먹고 마십니다이것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에 동참을 의미하는 것이고 자기를 버림으로써 거듭 태어난 부활(復活)의 삶을 살겠다는 약속입니다그러므로 기복(起福)을 구걸(求乞)하는 미신(迷信)에서 벗어나 자기를 희생하는 아가페 사랑으로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사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입니다.

 

草人     奉    俊    錫

게시글 공유 URL복사
댓글[0]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