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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 봉준석  (junsbong)
  • 2023-02-15 09: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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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의 목적은 받은 생명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도록 주어진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생명으로 사는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삶의 목적은 갑자기 어디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서 삶의 목적을 스스로 찾아서 정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월이 흘러도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하고 종말을 맞을 수 있습니다.

 

삶의 목적을 이루는 것은 다른 사람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있으나마나 한 사람이 아니라 있어야할 사람으로 살아서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마태 10,8) 삶을 사는 길 외에 생명의 은혜를 보답하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함께하는 사람에게 베풀고 희망을 주는 삶을 사는 것이 거저 받은 생명으로 사는 길입니다.

 

인간이 자식을 낳고 키우고 살다가 죽음으로 끝난다면 짐승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므로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의 목적은 명예와 권력과 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삶의 수단과 방법이 될 수 있어도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이고 떠나야 하는 숙명의 답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많이 벌었고 존경을 받는 직위에 올라 명예를 누리고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의 삶의 목적은 직책과 직위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를 정확하게 정하기 위해서는 존재의 의미와 삶의 가치, 그리고 신(神)의 존재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데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 에 대한 이해 없이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를 확실하게 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삶의 길이 ‘이런 것이다.’ 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가 정확한 사람은 사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으나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가 정확하지 않으면 자기상실(自己喪失) 속에 사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를 모르고 배부른 돼지처럼 살아서 삶의 목적보다 욕심의 노예로 사는 것은 생명의 목적으로 사는 삶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를 아는 사람이면 어떤 역경이든 이겨낼 수 있다“는 니체의 말처럼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를 아는 사람은 욕망의 유혹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가게 되고 “도대체 사는 게 뭔가." 하는 고민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의 목적이 정확하지 않으면 공허한 삶을 살아가게 되고 살아 있어서 사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조건과 환경에 살아도 허상(虛想)을 향한 욕심의 노예로 사는 것은 물질적인 노예로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위해서 서두르지 않으면 놓치고 손해를 볼까봐 조급하게 앞을 향해 달려간다고 해도 영원히 살 수 없는 인간은 태어나기 전 자리로 돌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황혼에 이르러 늙고 병들어 목적 없이 살아온 삶에 대한 아쉬움 속에 고별(告別)을 하게 된다면 허무와 후회로 종말을 맞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삶의 목적은 스스로 찾아야하는 하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은 세상을 더 밝고 따뜻하게 만드는 가치(價値)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草人    奉  俊  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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