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커뮤니티 > 무진칼럼
한라산이나 설악산의 정상에 가까이 가면 작은 초목들로 이루어진 드넓은 초원 지대를 볼 수 있습니다. 바람이 너무 강해서 큰 나무들은 자랄 수 없고 풀이나 키 작은 관목들만 살 수 있어서라고 합니다. 인생 역시 곳곳에 고비를 숨기고 있어 자신만만한 삶을 흔들어 놓습니다.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서 자기가 목표한 바를 성취할 경우 갖가지 교훈과 함께 그 노력을 칭송하는 것도 그런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삶의 길이 따뜻한 햇볕과 부드러운 바람만 부는 평온함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지요. 살아가는 모습들을 지켜보면 물결에 흔들리면서 나름대로 꿋꿋이 버티려는 의지가 처연하기도 합니다. 허영이나 욕망, 또는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어 쓰러지기도 하고 다시 제자리에 서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살아가는 한 피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인간은 영리한 만큼 간사하기도 해서 어려울 때는 아쉬운 마음으로 이런저런 신에게 빌다가도 조금 풀리는 것처럼 보이면 자신의 재주로 모든 것을 이룬 양 의기양양해합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비롯해서 모로코의 지진 등 역병이나 자연재해는 인간들의 알량한 재주를 가끔씩 온통 뒤집어 놓습니다. 과학으로 원인을 분석할 수 있고 많은 비밀을 밝혀냈다고 자부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를 통제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하고 또 알아냈다고 자신하는 만큼 오히려 미지의 세계는 더 확장되고 있습니다.
우연히 유튜브 동영상에서 여성 노인들을 상대로 한 강연을 보았습니다. 나이 들면 자식들과 떨어져 혼자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육아는 기쁨이지만 노부모 봉양은 안타까움과 짜증’이라고 하는, 솔직해서 잔인하게마저 느껴지는(!) 주장이었습니다. 기쁨으로 자식을 낳아 천신만고를 거치며 길렀으나 다 커버린 자식들은 부모의 노후에 대해 평균적으로 접근합니다. 자식이 더 이상 부모를 모실 수 없는 이 현상은 고령화와 함께 피할 수 없고 한평생 흔들리며 살다가 이제 종착역에 이르러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느냐, 즉 스스로 준비하는 마무리가 중요해졌음을 알려줍니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해피 엔딩을 경계하라면서,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보는 세계는 오직 한 가지 결말만을 낳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모습들이 멸하고 우리 심장이 죽고, 해체되고, 절단되고, 처절한 고통을 겪는다.”
이제 인생은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며 사회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유병장수, 무전장수, 무업장수가 노년의 3대 비극’이라고 할 만큼 오히려 나이 들어 더 흔들리는 삶은 점차 세계적인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런 슬픈 현실을 앞에 두고 있으나 한 편의 시가 안위를 주기도 합니다.
헌책 / preston
젊었을 때는 까칠했다
한 장 한 장 날을 세우고 함부로 대하는 놈은 사정없이 손가락을 베어버렸다
모서리마다 각을 잡고 폼을 잡았다
찐한 잉크 향수를 온 몸에 뿌리고 멋도 내었다
열심히도 살았다
많은 고뇌로 생긴 밑줄도 있고 사색으로 생긴 별표도 있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실수를 거듭하면서 생긴 갈매기 표시도 곳곳에 있다
오랜 세월 힘든 일도 많았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밤샘을 하기도 했다
이제는 때도 묻고 곳곳에 주름살도 생겼다
한 장 한 장 성질은 온순해지고
모서리는 겸손해졌다
찐한 잉크 향수 대신 내면에 향기를 품었다
세상의 풍상을 견디면서 성숙해졌으니 곧 다가올 영원한 떠남을 아름답게 맞이한다면 나지막하면서도 소박한 삶의 향기가 그런 대로 누군가에게 전해져서 꿋꿋이 견딜 의지가 되지 않을까요?
조 창 희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