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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동물이라는 명칭이 어느 순간 반려동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병원은 물론이요 쇼핑몰, 유치원, 호텔, 건강보험, 신용카드까지 생겼습니다. 저녁 무렵 산책길에는 사람 반 강아지 반인 세상입니다. 돈 냄새를 기막히게 맡는 힘이 순식간에 만들어낸 시장, 사람(심지어는 부모)보다 오히려 동물에게 더 관심을 가지는 세태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투정도 가끔 해봅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가 1,500만명이고 가구로는 600만가구에 이른다고 합니다. 가족처럼 여기는 것을 넘어 떠받들고 사는 집사들도 등장했지요. 그 이면에는 마음 붙일 곳을 찾는 외로움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정호승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 <수선화> 부분
어떤 사람은 외로움을 견디는 힘, 즉 고독력을 주장하지만 인간의 정신은 그만큼 강하지 않다는 것을 최근의 몇몇 사건들은 말해줍니다. 얼마 전 부산 영도구에서 혼자 살던 74세, 69세 남성 두 명이 각각 고독사한 것이 한 날에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1인 가구의 증가, 고령화와 함께 점점 단절되어가는 사회적 고립은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더욱 부각시킵니다.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헛헛함이 마음을 차지하고 점점 그 영역을 넓혀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극단에 이르게 됩니다.
누구나 혼자 태어나고 혼자 죽을 수밖에 없고 외로움은 우리가 매일 마시는 공기와 같다고 하지만, 직접 겪기 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만큼 우리들은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단순히 물리적으로 혼자 있기 때문에 외로운 것만은 아니겠지요. 인간은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을 때 외롭다고 합니다. 마음속에 진정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덜 외로울 수도 있겠지요. 때로는 물안개 피어나는 실개천의 아스라한 풍경이나 산 능선 위로 곱게 떨어지는 노을, 단풍으로 물든 고적한 길이 잠시 마음을 위로해주기도 하지만, 함께 나눌 사람이 있을 때 더욱 빛이 나겠지요. 반려동물이나 식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 종교적인 의탁 역시 그런 실천의 한 가지일 겁니다.
그러나 사람인 이상 아무도 진정으로 나를 사랑해 주지 않고 나 또한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때에는 외로움에 몸을 떨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기도 하듯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가장 큰 외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면서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뜨겁게 사랑한다며 결합하고선 미묘한 대립을 하다가 갈등을 느끼며 미워하고 헤어지는 모순이 오늘을 사는 풍경이기도 합니다. 또한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는 앞으로도 고독사가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추측하게 합니다.
영국에서는 2018년부터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해 왔다고 합니다. 고독사가 사회 현상으로 대두되면서 외로움을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에서 국가적으로 대응해야 할 과제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가는 방향성을 설정하고 제도를 마련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겠지요. 피할 수 없는 외로움이라면 함께 견딜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지역사회에서 더 다양하게 만들어져야 하겠습니다.
조 창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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