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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정서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고향은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의‘고향의 봄’에 담겨 있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겨울이 떠나고 봄이 산 넘어 오솔길 따라 찾아오면 매화, 산수유, 벚꽃, 개나리, 진달래, 철쭉, 영산홍 등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눈부실 만큼 아름다우면서도 보드라운 꽃잎은 겨우내 얼어붙은 모든 생명에게 부활의 기쁨을 선물합니다. 하지만 꽃의 아름다움은 사람들의 경탄을 위해서만은 아니지요. 봄 날씨의 변덕이 매우 심했던 올해, 벚꽃은 축제에 참여할 여유도 없이 꽃비가 되어 내렸고 사람들은 매우 아쉬워했지요. 하지만 꽃이 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끔찍한 현실일까요? 겨울에도 매달려 있는 인조 벚꽃은 공해 수준이라고 느끼곤 합니다. 나무는 또 겨울에 대비하여 열매를 맺어야 하고 그 준비로 꽃을 피웁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꽃의 열정이 응축되어 맺히기 시작하는 씨앗의 모습에 있지 않은가 합니다.
최근 인간 승리를 다룬 두 편의 농구 영화를 보며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리바운드>. 전자는 만화가 원작이라 현실성이 떨어졌지만 지난 날의 추억에 젖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후자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감동이 현실적이었고 어려운 여건에서 승리를 위해 애쓰는 투혼은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다시 꽃피우는 나무들과 교체 선수도 없이 결승전까지 올라간 부산 중앙고 선수들의 투혼은 서로 통한다고 봅니다. 주어진 시간을 감내하면서 묵묵히 주어진 길을 걸어감으로써 자신들만의 성취를 이루어내는 것. 경쟁하되 비교하지 않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을 승리의 원동력으로 삼기 때문일 것입니다.
꽃은 이내 초록의 잎들에게 자리를 내어 줍니다. 봄이 서서히 지나가면서 푸르러지는 신록의 계절로 향하는 동안 어쩌면 꽃보다 더 고될지도 모를 나뭇잎들의 노동이 시작됩니다. 가을에 맺힐 열매를 위하여 꽃은 꽃대로, 잎은 잎대로 자기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존재의 의미는 자기 나름의 의미를 가꿈으로써 사회의 소박하면서도 바람직한 변화를 보태는 데 있습니다. 제 잘난 멋에 우쭐대며 지위나 명예나 소유를 자랑하는 것은 얼마나 추한 행위인지 현재는 물론이요, 과거의 많은 기록을 통해 우린 통감합니다.
계절이 때에 맞는 변화로 순리를 따라가는 것처럼 각자의 삶도 연륜에 맞는 성숙도를 보여줄 때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소유와 향락에 함몰된 물질주의 문명 속에서 자아들은 이에 종속되기 쉽습니다. 오직 하나의 가치만을 섬기는 것처럼 보이는 세태를 이겨내려면 잠깐이라도 욕망을 내려놓고 참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눈 내리는 길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네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는 시가 있습니다. 지혜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때 오늘 나의 시간은 미래에 비추어 과연 어떠한지 살펴보아야겠습니다. 꽃은 꽃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저만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스쳐가는 풍경이 가슴 저리도록 아름답습니다. 라일락 향기에 이어 곧 하얀 아카시아꽃이 푸른 하늘을 채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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