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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 실력이 대단한 두목(!)을 중심으로, 한 고등학교를 주름잡는 교내 폭력집단이 있다. 그는 학교 행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부모의 힘을 등에 업고 교사들에게까지 협박을 서슴지 않으며 경찰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할머니가 김밥을 파는 한 학생을 희생양으로 지정해서 온갖 모욕과 폭행을 가하고 그 과정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부모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학교폭력 예방 우수 기관으로 선정된 이 학교에, 그 학생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기간제 교사의 후임으로 ‘소시민’이 부임한다. 그녀는 정교사 임용에 목을 매고 있었기에 부장 교사로부터 학교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듣지도 보지도 말하는 것도 하지 말라는 강력한 충고를 듣게 된다. 그러나 전직 복서이자 태권도 3단 합기도 3단의 그녀는 자기 반 학생이 말도 안되는 폭력을 당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고양이탈을 쓴 채 그 폭력집단의 우두머리를 향한 응징을 시작합니다.
만화 원작의 영화 《용감한 시민》은 흥행 차원에서인지 헐리우드식 문법과 닮은 면이 있어 식상한 점도 있지만 사회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현실을 생각하면 그나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합니다. 기간제 교사가 정교사 임용도 포기하게 될 불이익을 무릅쓰고 한 학생을 위해 나선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그토록 충실했을까요?
종종 참석하게 되는 결혼식은 축하의 자리이지만 곰곰 생각하면 과연 그렇기만 할까 하는 의구심을 품을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많은 축복 속에서 성대하게 결혼했는데 몇 년 되지 않아 파탄나는 등 이혼률이 절반이나 된다는 통계도 있고, 설령 이혼에 이르지 않더라도 ‘죽지 못해’ 같이 산다는 갈등 속의 가정도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혼은 판단력 부족으로 이뤄지고, 이혼은 인내심 부족으로 이뤄지고, 재혼은 기억력 부족으로 이뤄진다.’는 말도 있듯이 사랑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가장 많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습니다.
사랑, 과연 무엇일까? 사랑은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 스토르게 네 가지로 분류되는데 ‘인간은 이성간의 사랑인 에로스에 의해 태어나고, 혈연간의 사랑인 스토르게에 의해 양육되고, 친구 사이의 우정인 필리아에 의해 다듬어지며, 거룩하고 무조건적인 사랑 아가페에 의해 올바른 인간으로 완성된다고 합니다. 아가페적 사랑의 단계에서는 사랑을 행하는 자와 그 대상 사이에 에로스의 갈망이나 필리아의 호의적 교환 같은 조건이 존재하지 않는것이고, 사랑은 곧 이상으로서 자연스럽게 베푸는 것일 뿐이다.
성경 고린도전서 13장 성가에는 그런 이상을 정말 아름답고 완전하게 보여줍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며 사랑은 무례히 행치않고 자기에 유익을 구치 않고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네 사랑은 모든걸 감싸주고 바라고 믿고 참아내며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세상 끝까지 영원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이런 사랑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리는 누군가는 우울증과 자살로 내몰리고, 자신도 언젠가 그런 상황에 처할지도 모르는데도 과시적인 허영을 드러내는 문화가 영혼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어리석은 이런 행태는 사회를 불행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말 것입니다.
“고승대덕은 신도를 가르치지요. 하지만 신도를 가르치지 않고 모시는 경지가 더 높습니다. …자비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배급해 주는 게 아닙니다. 자신을 바쳐 남을 이루어 주는 것이지요. 자신을 아래에, 사부대중을 위에 둘 수 있으면 진정한 고승입니다. 네가 부처라는 가르침이 바로 그것이지요. 자신을 바쳐 누군가를 위하겠다는 마음이 바로 부처입니다.”
김진명의 소설 『풍수 전쟁』을 읽다가 이 구절에서 약간의 각성을 해보면 종교에 관계없이 모두 지향하는 이런 아름다운 세상이 왜 그토록 어려운가요.
《용감한 시민》은 주인공 ‘소시민’이 정교사 임용을 포기하고 또 다른 해악이 있는 학교의 기간제 교사 임용 면접을 보는 장면으로 끝난다. 아가페가 꼭 그렇게 영웅적이고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상의 작은 부분들에서 보여주는 배려가 모여 커다란 흐름이 될 수 있습니다.
김남조 시인은 ‘사는 것의 외롭고 고단함’을 ‘그대의 사랑문을 열 때’ 달랠 수 있다고 노래하면서 “우리는 사람끼리 깊이 사랑합니다. 많이 잘못하면서 서로가 많이 고독하다는 인간의 원리를 깨닫기도 합니다. 결국 사람은 서로간에 아름다운 존재라는 긍정과 사랑과 관용에 이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조금 더 역지사지함으로써 이웃을 살피고 돕는 마음, 내 자신을 위해서도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가장 소중한 정신 자산이 아닌가요.
조 창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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